장밋빛 안경은 필요할까? 긍정적 환상에 대해

기원전 4세기경, 그리스 철학자인 데모스테네스는 “자기를 속이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은 없다. 우리는 바라는 것에 대해 쉽게 믿어버리고 만다”고 말했다. 몇 가지 흥미를 유발하는 당대의 연구들은 자존감 뿐 아니라 행복은 보통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관련되어 있지 않다고 진술한다. 이 결론은 아마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할 것이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필요가 없는가? 실제적 인식이 없다면, 우린 그저 “‘바보’의 낙원”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역으로, 행복한 사람들은 자기 고양적인 비교 기준을 선택할 뿐 아니라 자신에 대해 그저 사실은 아닌 의견들을 유지하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증거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과 미래를 “장밋빛 안경”을 통해 바라본다. 이러한 결론에 동의하는 연구자들은 자기와 자신의 미래에 대한 긍정적 편향을 지니는 것이 정확하고 유효한 자기 평가를 유지하는 것보다 실제로 정신 건강에 더 좋다고 제안한다. 심리학에서 이 현상은 긍정적 환상을 갖는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Shelly Taylor와 Jonathan Brown은 자기에 대한 지나치게 긍정적 평가와 과도하게 낙관적인 미래에 대한 신념, 그리고 통제감에 대한 과장된 지각은 모두 더 나은 정신 건강과 연관된다는 주장을 함으로써 이러한 논의에 불을 붙였다. 또한 Taylor와 연구진들은 긍정적 환상이 더 나은 육체적 건강, 그리고 역경에 대한 보다 나은 대응 방법과 연관이 있다는 점을 밝혔다. 심지어 한 연구에서는 긍정적 환상을 더 자주 사용하는 학생들이 더 좋은 점수를 받았다고 보고하였다. Taylor와 Brown의 연구는 그러나 심리학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예상했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장밋빛 안경을 쓰고 의도적으로 세상을 정확하게 보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강하게 반대할 것이다. 사실상 이어지는 연구들은 긍정적 환상이 어떤 경우에는 도움이 될지는 몰라도, 안녕감 증진을 위한 보편적 전략으로 추천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을 밝혀왔다. 첫째, 정신 건강에 대한 긍정적 환상의 영향력은 긍정적 환상이 어떻게 측정되느냐에 달려 있다. 한 예로, 자기애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을 매우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자기애는 시간이 지나면서 타인에게 덜 긍정적인 평가를 받게 되는 것과 연관이 있다. 같은 맥락에서, 대학생 집단을 조사한 바에 의하면 긍정적 환상이 자존감에 대한 즉각적인 위협에 대처할 때는 다소 적응적이나, 궁극적으로는 낮은 학점과 중도하차 등과 같이 더 초라한 장기적 결과들을 낳았다.

사람들이 긍정적 환상을 사용하느냐 여부는 구체적으로 무엇에 대한 판단이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예컨대, 자기 기만의 동기가 높거나 가치 평가가 이루어지는 특질에 대해 자기를 평가하도록 요구 받았을 때, 긍정적 환상의 사용은 더 잘 일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인간관계에서의 긍정적 환상의 사용은 누구와 교제를 하느냐에 좌우될 것이다. 낯선 사람과의 상호작용은 친구들과의 교제보다 긍정적 환상을 자극할 가능성이 더 크다. 이 사실은 왜 우리가 친구들과 함께일 때 더 편안하게 느끼는가에 대한 한 가지 이유를 제시해 준다: 우리는 그들에게 더 정직하고 개방적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긍정적인 자존감을 가진다는 것은 단순히 당신이 타인에게 받는 피드백의 내용과 무관하게 스스로에게 가치 있는 존재라고 계속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그들이 타인으로부터 받는 피드백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된 바와 같이, 실제 행복하다고 보고하는 사람들은 부정적 피드백을 더 잘 용인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부정적 피드백에 대한 대처를 더 잘 해내고 그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 자신에게 동기 부여를 할 수 있다.

Leave a Comment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Scroll to Top